독일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후 오페라 ‘케르베로스 이야기’, ‘1953’, ‘그 소녀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음악극 ‘이클립스’, ‘145년 만의 위로’, 영화 ‘마지막 밥상’, ‘허수아비들의 땅’ 등을 포함 다수의 가곡과 실내악곡을 작곡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이재신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곡들로 구성한 앨범 ‘멜로디즘’(Melodyism)의 10월 27일 출시 전에 평론가 자격으로 먼저 음반을 받아 감상하고 리뷰를 남기니 독자 여러분들의 감상과 구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서울 단단소이 (Seoul Dandansoy)
우리나라의 아리랑 같은 대중 민요인 필리핀의 단단소이를 모티브로 하여 영화 ‘허수아비들의 땅’의 OST로 삽입된 ‘서울 단단소이’는 이재신 특유의 단조풍의 신파 멜로디가 흐른다. 이런 곡을 들으면 이재신이 광주 송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가지 않고 곧바로 가요나 영화계에 투신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지금의 위상과 달라졌을 거라 확신할 정도로 이재신의 몸속에는 트로트의 뽕짝 느낌이 피아노의 옥타브 전주부터 절절하게 흐른다.
내 가슴에 별빛 (Starry Light in My Mind)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에 얽힌 이야기인 뮤지컬 ‘145년 만의 위로’ 중 ‘내 가슴에 별빛’을 비올라, 첼로, 피아노 편성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가을이라서 그런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 삽입된 김대명이 부른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정서가 닮아있다.
마분지 신부 (The Cardboard Bride)
이젠 필립 글라스 스타일의 미니멀음악이다. D단조의 왼손 아르페지오에 오른손 단선율이 왼손 베이스와 맞물리면서 바로크 아리아 또는 수난곡의 칸타빌레가 비올라를 통해 제시된다. 연극 ‘마분지 신부’의 메인 주제라고 하는데 곡만 들어도 연극의 분위기와 내용이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된다. 선율 반복 시 비올라는 옥타브 상향해서 더욱 호소력 있고 표현이 강하게 나온다.
소로우 (Sorrow)
3번 트랙의 ‘마분지 신부’에 이은 오장육부를 타들어 가게 만드는 간절한 비올라의 노래다. 가사가 있다고 해도 어울릴 정도로 노래에 따라있다. 새나 짐승의 접근을 막기 위해 사람의 형상을 가장하여 수확을 앞둔 들녘에 세워놓는 허수아비는 인간의 형상을 흉내 냈으나 실상은 속이 비어 있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수확이 다 끝난 들판에 기울어지고 망가진 채로 내버려진 허수아비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서부 몰락 지대’장면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재신은 그런 공허와 슬픔을 장6도의 음정으로 상승시키면서 중성화되어 가는 과정의 물꼬를 튼다. 궁금하지 않은가?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추억 (Memory)
장조다! 비참한 분위기의 2곡을 연달아 듣고 심란해진 마음을 따뜻한 악풍으로 달래주려는 이재신의 배려인가? 이재신의 음악은 슈베르트와 같이 자연스럽게 흘러서 좋다. 이재신 스스로 ‘추억’은 간단한 스케치를 발판으로 단숨에 써 내려갔다고 한다. 맞다! 곡은 이렇게 쓰는 거다. 쥐어 짜내고 억지로 가공하는 게 아닌 술술 이렇게 풀려가야 한다. (그러려면 타고난 음악성이 전제되어야겠지만) 인간사 회자정리다. 옛 친구는 가고 새로운 친구가 오고 떠난 사람 그리워하고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다. 그리고 왜라고 자문해 봤자 쓸데없다. 그나마 이재신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거 같다. 곡을 들으니 그렇다.
기도 (Prayer)
바흐-구노의 ‘아베 마리아’와 같이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반주에 맞춰 흐르던 선율은 마치 세월호의 침몰과 같은 묵직한 첼로 저음의 1분 32초 경의 한숨이 더해지며 충격의 강도는 크기만 하다.
쓰고 푸른 욕망, 인천 (Bitterblue Desire, Incheon)
인천아트플랫폼 공연 초연을 목적으로 작곡한 ‘쓰고 푸른 욕망, 인천’의 피아노 음형은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와 같이 꿈틀대는데, 거기에 인천이라는 만남과 헤어짐의 항구가 G#음의 비수로 꽂힌다.
라스트 프렐류드 (Last Prelude)
본래는 앨범 타이틀곡 ‘내 가슴에 별빛’의 전주곡으로 쓰였으나, 이번에는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의도는 처음이 끝이요,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순환을 뜻한다. 이재신은 작곡가로서의 자아와 주체를 표방한다. 시나 장면 등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을 생생한 음의 울림으로 귀에 들리게 한다. 그래서 이번 앨범의 종곡인 ‘라스트 프렐류드’는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며 여기에 이어질 이재신의 선율과 정서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돌고 돈다.
총평: 앨범명인 ‘멜로디즘’은 자칫 선율보다 음색과 기술에 치우치기 쉬운 요즘의 음악 환경에서, 음악의 본질인 멜로디로 돌아가자는 작곡가의 주장이다. 이 앨범은 작곡가 이재신의 음악적 이상과 고뇌, 목표 그리고 작가정신을 알 수 있는 방편이자 가곡과 오페라라는 인성 음악과 수많은 기악곡을 만들어낸 그만의 노하우가 압축된 이재신의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이다. 콰르텟 수의 멤버였던 비올라의 임경민과 첼로의 박한나에 피아노는 김강아가 맡았다. 오디오가이에서 녹음한 이번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이재신이 담당하였으니 이재신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뉴미디어 음악인 중 한 명이다.
評 : 성용원(작곡가, 본지 상임평론가)
(원본 출처)